내맘같은

설거지 잘하는 男子 혹은 女子 / 한병준

그리운건 너 2007. 4. 22. 01:21

설거지 잘하는 男子 혹은 女子 / 한병준

 

 

매 식사가 끝나고 나면
우리 집 싱크대 설거지통에는
오글오글 목간통이지요

 

어느 날 보육원에서 본 그 女子처럼
투덜대는 놈들부터 씻기는 거지요
우선 물로 샤워를 시키고
수세미에 트리오 두어 방울 두른 다음
쿠션 리듬 타는 소리가 나도록 손으로
너덧 번 오그렸다 폈다
아하~
금방 한 빛깔 좋게 거품이 나는데요
물속에 콱 처박힌 놈들부터 꺼내
앙살을 떨든 말든
한 놈씩 붙들어다
뽀드득 소리가 날 때까지
몽땅 거품을 내는 것이지요
보육원 그 여자 팔뚝 굵은 게 이해가 될 때까지 말입니다
맵다고 아우성치지요
좁은데 뒤섞이다 보니 그놈이 그놈 같아
스윽 한 번 더 훑어 보고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놈 씻겨야지요
어디, 힘들어갔던 엉덩이 풀리지 않겠습니까
어깨 가슴 철렁 내려앉는데요
게다가 성질 머리가 이래서요
고무장갑도 안 끼다 보니
손요, 말해서 뭐해요
고놈들 두루두루 말끔히 씻기고 나면요
한 자리 차지하고 계시잖습니까, 왜
냄비, 밥솥, 김치통
보육원에서 본 수족 못 쓰는 분들처럼.
맥이 쭉 빠지는 일입니다만
그래도 손 툭툭 털며
이까짓게 뭔 고생이래요, 하던
보육원 그 女子 생각하면요
가끔은 음악 틀어 놓고
어깨 엉덩이 다리 신바람나게
한 덩실 한다는 거 아닙니까

 

사는 게 보송보송 마름질하는 일 같습니다
나로 인해 모두가 흐뭇한 빛깔들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