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건 너의 Story...♡
청진 여자 / 안도현 본문
청진 여자
내가 사는 남쪽 나라
쓸쓸한 눈 내리면,
미군 없는 청진항에서
헌 자전거 한 대 빌어 타고
퍼붓는 눈발을 따라가서
어둠을 털어 내는 전등을 밝힌 집
백설기 같은 김이 하얗게 서린
유리문 열고 들어서면
갈탄 난로가 뜨거운 집
이름도 버리고 돈도 없이 왔노라고
내가 등 푸른 한 마리 정어리로
당신과 헤엄치고 싶다 말하면
동해 같은 자궁을 열어주는
사랑이라는 말보다 더 아름다운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봄에 눈이 온다는
물 맑은 청진항 부근에서
꿈의 벌레 같은 눈송이들이
이부자리를 따뜻하게 적시는 밤
아내를 남쪽에 두고
나는 죄짓는 마음도 모르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미역냄새를 맡으면
부끄럼 없이 굵어지는 어깨와 팔뚝
한반도의 허리를 꼭 껴안듯이
더 깊은 신천지 속으로
힘차게 나를 밀어 넣으면
온 바다로 파도 치는
청진 여자, 그녀와 하룻밤 자고 싶다
내가 사는 남쪽 나라
쓸쓸한 눈 내리면,
모든 것을 다 주어야
비로소 하나 되는 날
그 설레이는 첫새벽에
동해 붉은 해 같은 아이를 낳아
넘치는 젖을 물리게 될 청진 여자여,
우리는 간섭받지 않는
부부가 되고 싶다.
-청진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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