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건 너의 Story...♡
혼자 먹는 밥 / 오인태 대표시선 본문
오인태
◇ 1962년 경남 함양에서 태어남
◇ 진주교대 대학원 졸업. 경상대학교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문학교육 전공
◇ 1991년『녹두꽃』3집을 통해 문단활동 시작
◇ 시집『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1992년),『혼자 먹는 밥』(1998년),
『등뒤의 사랑』(2002년), 『아버지의 집』(2006년) 펴냄
◇ 89년 전교조활동으로 해직되었다가 94년에 복직
◇ 현재 진주 문산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진주교대 등에 출강
◇ (사)민족문학작가회의경남지회장
◇ E-mail / ohit12@hanmail.net
◇ 홈페이지/ http://www.sibab.pe.kr/
대표시 아버지의 집 한 때, 아버지는 목욕탕 보일러공이었다 쉰 나이 넘어 논 팔고 집 팔아 이농을 하고 이 공장 저 공사판 떠돌다가 아버지는 예순 넘어 하필 남의 집 아궁이에 남은 생애의 집을 지었다 나이보다 팽팽한 얼굴에 통통한 몸집의 목 욕탕 주인 과부는 걸핏하면 그 위태하기 짝이 없는 아버지의 집을 흔들어댔지만, 그래도 이만한 데가 없다며 아버지는 한사코 부들부들 떨리던 부지깽이와 부삽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런 밤엔 목욕탕 문간 옆 단칸방, 아버지의 집에는 송진 타는 냄새가 끓어올랐다 때로는 폐타이어 역한 냄새도 섞여 앙등을 하는 것이었는데, 교대를 졸업하고도 선생이 되지 못한 채 빌붙어 아버지의 청자 담배나 몰래 축내던 때, 나는 단 한 번도 그 집을 우리 집이라 부르지 않았다 마침내 초등학교교사로 정식발령을 받고 이후 아버지도, 집도 까마득히 잊어버렸던 것이었는데, 그 세월 동안 남의 아궁이 앞에서 아버지는 가슴속에 얼마나 많은 집을 짓고,* 또 태우셨을 것인가 모른다 위로 누나 넷을 낳고 늦게 장남을 본, 그 마흔 나이를 넘어 오는 동안 아버지도 가고, 아버지의 집도 재가 되어 하얗게 사라진 줄 알았는데 이렇듯 나는 오래전에 아버지 대신 버젓이 주민등록상의 호주가 되어 새 집에 살고 있는데 도대체 내 가슴에 아궁이처럼 시커멓게 입을 벌리고 있는 이 집은? *김명남의 「농부의 명함」중 일부분 인용 - 시집『아버지의 집』에서 가시연 떠다니는 것들이 어찌 물의 속을 헤아리랴 그 깊은 밑바닥에 뿌리내린 그대의 생애는 한 순간도 수심을 거스런 적 없다는 걸 알고 있다 때로는 발꿈치 돋워 높게 때로는 무릎 꿇고 낮게 엎드리며 더러 부유하는 것들, 또는 위로만 제 몸을 키우는 것들의 철없는 유혹의 말은 흘려들을 일이었으나 물의 숨소리 한 낱에도 민감했을 그대의 귀는 섬섬히 열려 매운 가시가 되었으리니 그리하여 그대는 이미 물의 표정, 혹은 물의 화석, 그 잠기고 묻혀 알 수 없는 내막을 주름진 눈매를 통해 짐작할 뿐, 이상하다. 나는 늘 물기에 젖어있는 그대 푸른 얼굴에서 왜 광물성 화기를 느끼는지 모를 일이다. 빗금으로 쏟아지는 햇살에 펄펄 단련되어 물의 숨통마다 분화구 같은 파문을 낼 것 같은 청동악기 그 맑은 그래, 그대 물 하나를 흔드는* 득음을 하셨는가 *배한봉시인의 시 '우포늪의 왁새'의 '산 하나를 흔드는'부분을 변주함 - 시집『아버지의 집』에서 예쁜 손
일산에서 손시인과 동태찌개로 더운 점심밥을 먹으면서, 미안했다 용인에 있는 정시인의 병 문안을 가는 길이었으니, 뇌종양을 앓고 있는 그는 지금쯤 이승의 남은 밥그릇을 어림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아플 때는 밥이라도 잘먹어야한다며 그 목멜 밥숟갈에 간간한 밥반찬이라도 얹어주자는 손시인의 말에 소래포구로 차를 돌린 것이었는데, 그날따라 하늘과 땅의, 바다와 뭍의 경계를 지우며 허연 눈발이 흩날렸다 우왕좌왕
삶과 죽음의 경계 또한 이렇듯 모호하고도 불안한 것이리라 한참 길을 헤매다 찾아든 소래포구, 마른 갈대들이 갈피를 못 잡고 종종거리고 있었지만 여기저기, 헤진 깃발들은 길을 알려주지 못하고 있다 미친 듯이 바람은 향방을 잃은 채 나부대고, 겁도 없이 대열의 앞장에서 손을 치켜들던 내 이십대, 이은 삼십대조차 두렵고 부끄러웠던지, 아, 눈을 돌린, 저기 폐염전 위의 소금창고 몇은 건재하다 여전히 소금을 쌓듯 혁명을 꿈꾸는가 눈발은 필름 끊긴 영화 스크린의 잔광처럼 번득이는데, 아무렴
살아야한다 목이 메더라도 새우젓이며 어리굴젓이며 오징어젓갈을 꾸역꾸역 담고 있는 저 예쁜 손들 - 시집『아버지의 집』에서 상족암*에서 발자국은 절벽에서 홀연히 끊겼다
그 순간, 깊은 울음을 내지르며 그이의 눈은 천길 만길 아득한 저 바다를 내려다보았을까 아니면 겁에 질린 눈으로 붉었을 하늘을 쳐다보았을까 여리고 지순한 진흙같은 가슴에 날카로운 발자국을 찍어대며 무거운 생의 사변 하나 지나갔음이야 또한 추측할 뿐이다
잊어버려라 잊어버려라 속 모르는 파도는 끊임없이 세상의 가볍디가벼운 사랑을 속삭이며 위로하려들지만, 정작 그 긴 세월 바위가 되도록 부릅뜬 눈을 감을 수 없는 이유는 이렇듯 가슴에 깊이 패인 상처가 아파서가 아니라 어디론가 쫓기듯 사라지던 그이의 뒷모습이 못내 눈에 밟혀서이리라 느닷없이 찾아와서 한 번도 허락한 적 없는 순결한 몸에 불도장 같은 뜨거운 사랑의 흔적을 남기고 현옹수도 채 멎기 전에 표연히 사라진,
아, 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도 그렇게 왔다 갔다
더 이상 묻지 않기로 하자 다만, 그 퀭한 바위의 눈들이 내내 서늘해서 말이다
*경남 고성의 공룡발자국 화석이 있는 바위 해변 - 시집『아버지의 집』에서
등뒤의 사랑 앞만 보며 걸어왔다. 걷다가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등을 돌리자 저만치 걸어가는 사람의 하얀 등이 보였다. 아, 그는 내 등뒤에서 얼마나 많은 날을 흐느껴 울었던 것일까. 그 수척한 등줄기에 상수리나무였는지 혹은 자작나무였는지, 잎들의 그림자가 눈물자국처럼 얼룩졌다. 내가 이렇게 터무니없는 사랑을 좇아 끝도 보이지 않는 숲길을 앞만 보며 걸어올 때, 이따금 머리 위를 서늘하게 덮으며 내가 좇던 사랑의 환영으로 어른거렸던 그 어두운 그림자는 그의 슬픔의 그늘이었을까. 때때로 발목을 적시며 걸음을 무겁게 하던 그것은 그의 눈물이었을까 그럴 때마다 모든 숲이 파르르 떨며 흐느끼던 그것은 무너지는 오열이었을까. 미안하다. 내 등뒤의 사랑 끝내 내가 좇던 사랑은 보이지 않고 이렇게 문득 오던 길을 되돌아보게 되지만 나는 달려가 차마 그대의 등을 돌려 세울 수가 없었다. -시집『등뒤의 사랑』에서. 사람의 가슴에도 레일이 있다 그 여름 내내 기차는 하필 잠들지 못하는 늦은 밤이나 너무 일찍 깨어버리고야 마는 새벽녘에야 당도해서 가슴을 밟고 지나갔다. 사람의 가슴에도 레일이 있는 것임을 그 해 여름 그 역 부근에 살면서, 한 사람을 난감하게 그리워하면서 비로소 알았다. 낮 동안 기차가 오고, 또 지나갔는지는 모를 일이다. 딸랑딸랑 기차의 당도를 알리는 종소리는 늘 가슴부터 흔들어 놓았다. 그 순간 레일 위의 어떤 금속이나 닳고닳은 침목의 혈관인들 터질 듯 긴장하지 않았으랴. 이어 기차는 견딜 수 없는 육중한 무게로 와서는 가슴을 철컥철컥 밟고 어딘가로 사라져갔다. 아주 짧게, 그러나 그 무게가 얼마나 오래도록 사람의 가슴을 짓눌렀는지를 아, 기차는 모를 것이다. -시집『등뒤의 사랑』에서 혼자 먹는 밥 찬밥 한 덩어리도 뻘건 희망 한 조각씩 척척 걸쳐 뜨겁게 나눠먹던 때가 있었다. 채 채워지기도 전에 짐짓 부른 체 서로 먼저 숟가락을 양보하며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내 배가 불러지며 힘이 솟던 때가 있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것 이제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누구도 삶을 같이 하려 하지 않는다. 나눌 희망도 서로 힘돋우워 함께 할 삶도 없이 단지 배만 채우기 위해 혼자 밥먹는 세상 밥맛 없다. 참 살맛 없다. -시집『혼자 먹는 밥』에서 다산 초당에서 산그늘이 내리고 나무들은 모두 그림자를 거둬들였다. 풀들도 순순히 제 색깔을 어둠 속에 맡기고 어차피 길손들은 서둘러 산을 내려갔다. 다시 세상은 적막하여라. 이따금 낮게 산죽 쓸리는 소리 언제 오셨나. 천일각 위에 달님 한 분 내려다보고 계시다. -시집『혼자 먹는 밥』에서 아우에게 너에게는 참 할말이 없다. 위로 누나 넷으로 늦본 맏이 그늘에 묻혀 입는 것 하나 제대로 네 몫으로 산 것 없고 먹는 것 하나 따뜻하게 네 것으로 챙겨진 일 없던 아우야 형이 네가 못 나온 고등학교를 나오고 값싼 교육대학이나마 졸업한 것은 누나들이 그랬던 것처럼 보리밥으로 덮은 형의 쌀밥 도시락과 쌀밥으로 덮은 네 보리밥 도시락의 차이를 묵묵히 눈물로 삼켰을 아픈 인내와 희생의 대가임을 이 형인들 모를까 네가 책가방보다 또래들의 주먹다짐에나 어울리고 어렵게 입학한 공고를 몇 달 만에 네 말대로 때려치우고 나온 것도 아우야 이 형은 네 속깊은 마음을 두려움으로 간직하고 있다. 그런 형이 네게는 사치스런 구호로 들릴지 모를 '교육민주화'니 '정의'니 '양심'이니 하며 식구들의 굶주림과 눈물과 끝내는 어머니의 죽음으로 바꾼 교단을 쫓겨나와 너를 대하던 날 한마디 말없이 지켜보던 네 눈빛이 '차비나 하라'며 쥐어 주던 지폐 몇 장이 돌아오는 찻길 내내 칼날바람 되어 가슴 도려지고 너에게는 참 할말이 없다 미루나무 그림자 속으로 멀어 지며 돌아보는 눈길 몇 번이나 마주치던 아우야 -시집『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에서 냉이꽃 1 길가에나 묵정밭 더러는 쇠똥무덤 돌틈새 찰싹 몸 붙이고 있다가 일제히 고개 들고 일어나 세상을 하얗게 덮어 버리는 혼자서는 작은 꽃 어우러져서 큰 꽃 - 시집『그곳인들 바람 불지 않겠나』에서
'내맘같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일 / 류시화 (0) | 2007.03.29 |
---|---|
기다림 / 박우복 (0) | 2007.03.29 |
삶은 달걀 / 백우선 (0) | 2007.03.28 |
마음의 달 / 천양희 (0) | 2007.03.15 |
결혼에 대하여 / 정호승 (0) | 2007.01.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