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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건 너의 Story...♡

빈 논 / 안도현 본문

안도현님

빈 논 / 안도현

그리운건 너 2006. 4. 26. 14:38

빈 논


아버지
아버지의 논이 비었습니다
저는 추운 書生이 되어 돌아와 요렇게 엎드려
빈 논, 두려워 나가 보지도 못하고
껴안지는 더욱 못하고 쓸쓸한
한 편 시를 써 보려고 합니다
옛날 이 땅에서 당신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참나무 가시나무 마른 억새풀
아궁이 가득 지펴 펄펄 끓는 쇠죽솥
쇠죽솥 같은 앞가슴
아직도 만들지 못하여서요,
저 죽은 논에 까무잡잡 살 없는 논에
물줄기도 비켜 가지 않게 불러들이고
그 흙물에 서늘히 발목을 적시고
눈 닿는 곳이 다 내 하늘이라
아버지 뼈가 이룬 몸 하나로 버티며 서 계셔도
아, 바로 아버지가 하늘이었지요
그때야말로 가난이 넉넉한 재산이었지요
오늘밤 아버지의 논에 누운 살얼음을 밟고
달이 둥실 뜨는 것을 아시는지요
달빛을 따라
이 궁핍한 밤에도 삽을 들고
성큼 성큼 논으로 나가시는 아버지
옛날 이 땅에서 당신이 그러하셨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바지 활활 걷어 부치고
역사의 논물에 발을 담는 것도
거머리가 붙으면 이놈의 거머리 하며
철썩 젖은 종아리 아무 일 아닌 듯 때리는 것도
저는 겁나는 일이기만 한데
세상의 어둠 다 몰려와 난리를 치는
빈 논에 아버지 돌아오셨군요
아버지의 논바닥 저 깊은 곳에서
겨울에도 푸른 모들은 힘차게 꼼틀거린다고
제가 쓰는 시 이 부족한 은유로는
당신의 삶 끄트머리도 감당할 수 없음을 압니다
아버지
꿈에도 논에는 나오지 마라 하시지만

 

- 안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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