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건 너의 Story...♡
낭만주의 / 안도현 본문
낭만주의
저 변산반도의 사타구니 곰소항에 가면
바다로부터 등 돌린 폐선들,
나는 그 낡은 배들이 뭍으로 기어오르고 싶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뭣이? 바다가 지겹다고?
나는 시집을 내고 받은 인세를 모아서
바다에 발 묶인 배 한 척을 샀던 것이다
세상에, 아직도 시를 읽는 사람이 있나, 하고
너는 마치 고장난 엔진처럼 툴툴거리겠지
하지만 말이야, 배를 천천히 뭍으로 올려놓는 순간,
그 어둡던 바다도 배도 단번에 환해졌단다
그때 덩달아 끼룩끼룩 울어 준 것은 갈매기들이었고
너는 이해할 수 없다고, 바다만 바라보겠지
나는 배를 데리고 갈 방도를 생각하느라
20년 동안이나 끙끙대며 시를 쓴 것 같다
배를 분해해서 옮기는 일은 재미가 없을 테고
트럭 짐칸에다 배를 통째로 태우는 건 더 우스꽝스런 짓이지
그래서 밀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귓불이 연하고 빨간 아이들이 조기떼처럼 재잘대며 배를 따라 왔던 거야
생각해 봐, 여러 개의 손들이 한꺼번에 배를 민다고 생각해 봐
배도 힘이 났던 거야
국도를 타고 가다가
지치면 미끄러운 보리밭으로도 가고.....
배를 밀고 가는 나를 보았다면, 너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핑계를 대거나, 미친 짓이라며 손가락질했겠지
나는 배를 잠시 멈추고 네 귓구멍이 뻥 뚫리도록 뱃고동을 울려 주었을 거야
詩를 읽는 시간에 자신을 투자할 줄 모르는 인간하고는
놀지 않겠다, 절교다, 하고 말이야
나는 장차 배를 밀어 산꼭대기에 올려놓을 것이다
무엇 때문에 배를 산꼭대기로 밀고 올라가느냐고?
다 알고 있겠지만, 나는 시인이거든
내가 항해사였다면 배를 데리고 수평선을 꼴깍, 넘어갔을 거야
-안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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