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건 너의 Story...♡
원태연 / 사용 설명서(4집1부) 본문
제 1 장 아침
그녀의 과거
며칠 전
또 누군가
인사없이 사라져 버렸다
서로 같은 처지에
말 한 마디 없이 가버리는 그들이
야속하기는 하지만
생각해보면 이곳을 오가는 것은
자신들의 의지가 아닌 것을
이러다 나 역시
사라져 돌아오지 못하는 사람들처럼
영영 쫓겨나는 것은 아닐지
오늘도 그녀의 기억은
날 불러주지 않는다
초조한 마음
도대체 달랠 길이 없다.
아침
막 뽑아낸 커피를 마신다
막 떠오르는 그리움
눈물이 나온다
막.
분재 키우기
갈증을 느끼지 않도록
적당히 물을 주어야 해
먼지를 닦아 줄 땐
깨어나지 않게 신경을 쓰고
볕이 좋은 오후 3시엔
옥상에 함께 누워
무료하지 않을
이런저런 얘기를 준비해야 해
물론 가금
혼자 있고 싶어할 땐
신경쓰고 있지 않다는 걸 알게끔
신경쓰는 걸 잊지 않아야 해
그래도
아무리 그렇게 해줘도
저번 인형처럼
매번 같은 표정으로 웃고 있어도
비웃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안 돼
분재를 키우듯
바라보며 정성을 쏟는 것 외엔
아무것도 바래선 안 돼.
킬러 K Ⅰ
그녀를 이제 킬러 K라 한다
그동안 지켜본 결과
적은 말수와
섣불리 행동하지 않는 성격에
특히 점수를 줘
사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마음을 열고
그녀를 고용하기로 한다
성공여부에 대한 고민은
아직 않기로 하고
제거 대상에 대한 정보 역시
건네주지 않는다
벅찬 상대에 대한 물밑 작업으로
고용인인 나를 먼저 충분히 보이기로 한다
이제 지켜볼 것이다
그녀가 얼마
자신의 임무 수행에 성실할지
그리고 그로 인해
서서히 무너져갈
다시 없을 내 사랑의 마지막을......
킬러 K Ⅱ
킬러 K가 크게 웃는다
아직도 버리지 못한
나의 따스함에.......
순간 스치는 안쓰럼을
급히 접어버린다
그녀의 임무는
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사랑을 없애버리는 것이기에.
킬러 K Ⅲ
무너지고 있나요
사라지고 있나요
이 마음은
당신의 것이기에
나는 알 수 없네요
다만 킬러 K를 안고 싶어질 때
눈물이 흐르길래
그러고 있지 않나
생각할 뿐이예요.
킬러 K Ⅳ
오늘 킬러 K에게
선물을 건넸다
언젠가 구입한 기억이 있는 그것과
꼭 같은 것으로
그때와 꼭 같은 말과 함께.
건네 받은 킬러 K의 얘기가
내내 마음에 걸린다
'왜 우리 사랑을
내가 구경하고 있는 것 같죠'하는
킬러 K Ⅴ
'사랑해'라고 했는데
두눈을 바로 쳐다보고
다시 얘기하라고 한다
'그래 사랑해'
다시 얘기했는데
아무말 없이 듣고 있다
아무말 없이 일어선다
어떤 실수가 있었나
아니면 그녀가
미리 손을 쓴 것일까
또 한 사람 가슴에
못을 박아 놓은 것 같다
그렇다고 그만 둘 수도 없는 노릇
다음에 고용할 킬러에겐
많은 시간의 투자와
충분히 연습이 된
무르익은 사랑을 보여야겠다
충분히 숙성된 사랑으로
단 일격에
그녀를 보낼 수 있도록…….
발길
발길이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순간 접착제로
척, 붙여 놓은 것처럼
땅바닥에서 도무지
떨어지지 않을 때가 있다
그나마 발길마저
가슴을 찢어놓을 때가 있다.
내가 사랑했기 때문에
내가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는 아파지네요
사랑하는 일이란
사랑받는 일일텐데
나는 늘
그녀의 처진 그림자만 보게 되네요
내가 사라했기 때문에
그녀는 힘들어지네요
사랑하는 일이란
아름다운 일일텐데
나는 또
그녀의 긴 한숨소리만 듣게 되네요
내가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는 어려워만지네요
사랑하는 일이란
오래오래 하는 일이란 배웠기에
그녀는 오래오래
어려워만지네요.
CAFE PREPPIE
얼굴이 비칠 정도로 잘 닦여진
회갈색 탁자가 있었고
구체적인 모양새를 설명할 수 없는
재떨이가 있었다
허연 김이 올라오는 커피잔이 올려졌고
쓰고 있던 안경을
반만 접어 내려놓는다
뜨거운 물로 채워진 물컵이 올려지고
더 이산 허연 김이 보이지 않는
커피잔이 치워진다
반만 접어 내려놓은 안경을 닦으려
입김을 불어도
김은 서리지 않는데
꼭 여민 코트자락을
아직도 풀어놓지 못한다
그토록 가슴이 시렸던 건
바람이 차서가 아니었던 것 같다.
멍멍
아무개는
아무리 기다려도
아무 소식이 없건만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개를 기다릴 수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개를 기다릴 수 있는 건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개를 기다리는 것 외엔
아무런 할 일이 없기 때문.
진료일지
그는 언제나 바쁜 사람이다
다소 불규칙적이고
즉흥적인 면이 많지만
어찌됐든
그의 시간을 뺏는 일은 쉽지 않다
이제 그의 증세에 대한
나의 오진을 인정하기로 한다
지금껏 과대망상으로 몰아세운,
단 일 분도 몸을 가만두지 못한다든가
내게 욕설을 퍼부으며
같은 이름을 반복해 떠든다든가 하는.
그렇지만 그의 기억 한 부분을
영원히 삭제시켜야 한다는 나의 생각엔
변화가 없다
전보다 더 신중을 기해
그 기억 속으로 접근해 보는 수밖에…….
주문했던 거울이 도착했다
언제나 같은 얼굴의 배달원은
언제나 같은 표정으로 돌아선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매우 조심스럽다
나에 대한 원망과 경계의 눈빛은
아직도 강렬하다
그가 다가온다
언제나 나와 같은 걸음으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한번의 어김도 없다
다가서는 그의 걸음이 발라지는 것을 보니
또 같은 증세를 보일 것 같다
도대체 그의 한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거울
보여준다
그리고 덧붙여
그는 이렇게 생긴 사람을 사랑하다
그만두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당신
그 사람 이름을
당신이라고 합니다
잘생긴 턱선과
시원한 이마를 가진
그 사람 이름을
당신이라고 합니다
터무니없는 많은 기억으로 상처 주시고
그 터무니없이 많은 기억으로
치료를 해주시는
그 사람 이름을
당신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그 이름 떠올리는 것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일이지만
그 이름 떠들어댈 자격이 없는 몸이라
눈물을 머금고
그 사람 이름을
아름다운 당신이라고만 합니다.
어느 하찮은 것들에 대하여
나는 그런 것들을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무엇무엇 따위의
하찮은 것들
그 가치가
보잘것이라고는 없기에
아무도
그것들에게
의미를 부여해 주지 않는
그런 것들을
나는 꾸준히 기억하는 버릇이 있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 감사함의 표시로
한시도 날
떠나 있지 않는다.
평생을 두고 기억나는 사람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내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을 알고부터
그것이라고 바래야 했다
어쩌면
당연한 권리라 생각하며
슬프디 슬픈 사랑으로 기억 속에 남아
그 가슴 촉촉이 적시울 수 있게 되기를
이룰 수 없게 된 사랑을 대신해 바래야 했다
그래서 그때마다
그 눈물로 다시 태어날 수 있게 되기를
참으로 부질없음은
사랑하는 일이라고 믿으며
진작부터 그런 바람으로
평생을 두고 기억에 남는 사람이 되기를
나는
애원이라도 하며 바랬어야 했다.
익사
자살이라뇨
저는 그럴 용기 낼
주제도 못되는 걸요
그저
생각이 좀 넘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을 뿐이예요.
작별
작은 새가 한 마리 날아간다
꽤 많이 답답했는지
어색하던 날개짓
어느새 경쾌해진다
저렇게도 잘 날 수 있는 새를
이 좁은 가슴 안에 품어 키웠으니
그 정도만 아팠던 게
오히려 이상할 수밖에.
작은 새가 한 마리 날아간다
꽤 많이 답답했는지
경쾌하던 날개짓으로
어느새 작은 점처럼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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